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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책 북리뷰

by 목동부추 2022. 6. 16.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녀의 사랑

(약간의 스포주의)

어떤 가정이든 형제가 하나, 둘 또는 그 이상으로 많은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50년대에 태어난 주인공은 그 시대에는 별로 없던 중산층의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주변의 외동에 대한 혹독한 편견에 쌓여 자신만의 고독한 세상을 가지고 꽁꽁 마음을 숨기며 살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와 똑같은 외동인 여자아이를 만나면서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도 있을 만큼의 소울메이트로 그녀와 매일을 함께 합니다. 그러다 중학교 진학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면서 주인공인 하지메는 다른 여자 친구를 만나며 이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후에 부유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도 하고 장인의 도움을 받아 재즈 바를 운영하면서 두 딸까지 낳으며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완벽하고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완벽한 삶 속에서 하지메는 무언가 마음속의 공허함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늘 뭔가 자신의 인생에 결핍과 부재를 느끼고 있던 차에 재즈바로 매력적인 여자 손님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녀는 바로 어린 시절 그의 소울메이트였던 시마모토였습니다. 소설의 절정에 이를 무렵 다시 만난 하지메와 시마모토는 자신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들의 운명은 소설 속 결말에 이르며 점점 처연하고 애잔하게 끝을 맺게 됩니다. 과연 하지메의 현실과 이상 추구를 위한 끝없는 방황은 끝을 맺을 수 있게 될지 소설은 끝을 향해 갈수록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건조하면서도 가슴을 아리게 스치고 가는 하루키 스타일의 로맨스

서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이름이 신작 코너에 있다면 누구나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만큼 하루키는 한국에서도 독보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작가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소설이나 자전적 수필에 자신의 두터운 독자 팬들에게 보답하듯이 자신의 취향이 듬뿍 담긴 것들을 고스란히 책 속에 녹여 놓습니다. 이를테면 재즈와 클래식과 같은 고전적인 음악, 라이브 연주가 들리는 재즈바, 칵테일과 위스키, 야구 등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번 책 속에서도 이러한 하루키만의 독특한 취향은 책 스토리 속 곳곳에 묻어납니다.

주인공과 그녀가 사랑하는 여자가 어릴 적에 만나 함께 레코드 판으로 듣던 클래식(곡명까지 세세히)부터 주인공의 직업이 재즈바 사장인 것까지 하루키가 실제 재즈바를 운영했었던 경험이 맞물려 마치 도쿄의 어느 한 구석진 곳에 있을 법한 가게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생생함마저 들게 합니다. 그가 책 속에 명시해 놓은 재즈와 클래식 곡들을 직접 들으며 책을 읽어 내려가면 그만큼 충만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곡과 뮤지션들은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정리되어 리스트화 되어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중년의 자화상

책의 주인공인 하지메는 젊은 시절의 깨지고 아프게 했던 첫사랑, 자기 고뇌에 빠졌던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을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지금의 어느 정도 안정된 삶 속에서의 안락함이 깨질 것 같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 중년의 남자들을 대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일탈을 꿈꾸고 현실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끼고 싶은 인간의 심리와 지금껏 부딪히고 인내하며 이루어 놓은 직장, 결혼, 자녀들을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는 중년의 무게감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것입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에 대해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내가 이 소설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과거로부터의 영향에 대해서 무엇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며, 현실과 비현실(또는 각성과 비 각성)을 어떤 형태로 함께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 인간의 현재의 삶 속에 나타나 실재인지 아니면 주인공이 지어낸 허구의 환영 인지도 모르는 시마모토라는 여자를 통해 작가는 결국 과거라는 이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국 망각과 현실 긍정밖에 없다는 점을 각인시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반짝반짝 빛이 나던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오르면서도 문득 지금의 현실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한 청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나의 삶과 나의 배우자, 나의 예쁜 자녀들이 있는 걸 인지시켜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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