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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책<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북리뷰

by 목동부추 2023. 1. 2.

에쿠니 가오리 스타일의 쓸쓸한 도시 그리고 그 안의 가족 이야기

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은 것 같다.
대학교 시절 책 <냉정과 열정사이>를 그때의 남자친구와 함께 남자 편(츠지 히토나리 작), 여자 편(에쿠니 가오리)을 각각 교환하며 읽었던 추억이 있다. 그때 처음 그녀의 글을 보게 된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음울하고 쓸쓸한 가을 저녁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우울함이 늘 그녀의 글 속에서는 배어 있었다. 심지어 즐거운 내용의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20대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녀의 이러한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말로 ‘쿨‘하다고 하야할까. 그녀의 소설 속 내용을 통해 욕조에서 목욕하는 의식이라던가 클래식한 좋은 옷감의 옷을 구매하는 것 등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동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한창 푸르른 젊은 날 어른이 되어감에 필요한 성숙함을 배울 수 있는 소위 사회적 롤모델 말이다.
그런 내가 2년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되면서 30대 후반을 육아와 살림에 몰두하게 되고 보니 그때의 에쿠니 가오리 감성이란 나와는 꽤나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렵사리 시간을 쪼개어 서점이라도 가게 되면 나의 ‘취향‘보다는 육아서나 이유식 만들기 등의 책에 더 눈이 갔다. 이럴 수가. 결국 그렇게 나도 ’엄마‘가 되고만 것이다.
그러다 이러면 안되지 싶었다.
아무리 아줌마가 되고 엄마가 되었더라도 ’나‘는 ’나‘이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고를 자유가 있다!
누구의 아내, 엄마는 아직 어색하지만 그 역할들을 잘 해내려면 우선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이라면 핵공감을 할 것이라 믿는다. 내가 나임을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해야 나의 아이들도 충만하게 사랑하고 잘 해낼 수 있다.
무튼 그래서 나는 ‘나’를 잃지 않기위해 에쿠니 신작소설을 짚어 들었다.

노인의 시대에 대한 자조와 살아있는 자들의 커뮤니케이션

그야말로 노인의 시대, 노인의 인구수가 점점 불어나는 이 사회적 배경 속에서 어쩌면 실제로 '그럴법한' 세 노인의 죽음의 방식에 대해 사뭇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벌써 이런 얘기를 하자면 자칫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는 어르신들께는 죄송할 따름이지만 늙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 안에 쌓인 기억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것이 좋은 기억이던 아니든 간에 자꾸만 돌이켜 보게 되는 추억들이 머릿속을 가득가득 채우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추억을 공유하고 함께 나눌 적당히 친한 사이의 지인이 나를 포함하여 셋이 된다면 소설 속 세 노인과 같은 작당모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약간의 스포주의) 

세 노인이 같은 호텔방에서 동반자살을 한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소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왜 하필 친한 옛 직장동료들과 마지막을 함께 하려고 한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삶에 아무 미련이 없는 이 쿨한 세명의 노인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신세를 한탄하지도, 한 많은 표정으로 꺼이꺼이 울지도 않는다. 그저 마지막 마시는 한잔의 술을 음미하고 약간의 수다를 통해 긴장을 완화할 뿐이다. 아직 삶에 미련이 많고(?) 지켜야 할 어린 자식들이 있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지만 과연 내가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다 키우고 점점 몸이 노쇠해지는 것이 두려울 나이가 된다면 어쩌면 마음 아파할 자식들과 형제자매들 곁에서 그들의 슬픔을 지켜보며 죽는 것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반평생을 알고 지낸 남(?)들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이 그들만의 '배려'는 아니었을지 생각해 봤다. 

 

 

책 제목 :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지은이 : 에쿠니 가오리
출판일 : 2022년 9월 20일
출판사 :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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